Loading
2022. 12. 20. 00:41 - lazykuna

미국 IT회사에서 1년동안 일하기

어느덧 미국 IT기업에서 일한지 1년이 가까워지고 있습니다. 기간으로는 짧지만 저에게 있어서는 큰 변화였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올해 2022년은 유독 긴 느낌도 듭니다.

혹시 미국 IT 기업에서 일하는 것에 관심이 있는 사람을 위해, 그리고 제 스스로가 잊지 않기 위해서 정리해서 글을 올려봅니다. 올해 회고 글은 별도로 올릴 예정입니다 ㅎㅎ.

0. 어쩌다?

한창 이직하려고 알아보고 있을 때, 사람을 뽑는다길래 그래? 하고 봤더니 본사가 미국에 위치한 회사라고 하고, 영어 별로 못해도 된다고 해서 생각없이 지원했습니다.

… 인터뷰에서 바로 외국인분이 튀어나오더라고요.

뭐라는 거지… 그래도 대충 이거 풀라는거 같은데… 맞냐? 내가 말하는거 이해 못하면 손발텍스트 다 써서라도 알아먹게 해봐…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덧 회사에서 일한지 1년 가까이가 되어가네요.

참고로 저는 딱히 영어에는 조예가 없었고, 기본적으로 JPop과 락/메탈을 즐겨들으며 Shitpost meme를 즐겨볼 뿐이었습니다.

1. 한국 회사로서의 이야기

일단 제가 한국회사를 다니고 있기는 한데, 모태가 외국계이니만큼 특이한 점들이 좀 있습니다.

  • 본사는 미국 실리콘벨리에 위치한 스타트업이고, 한국에 새로 생긴 지사에 고용되었습니다.

    • 이민으로서의 삶을 기대하고 오셨다면, 아직은 그 단계는 아닙니다 ㅎㅎ.
  • 외국계 회사는 신기할 정도로 테헤란로에 많더라고요. 근처에 Google, 몰로코, Datadog 등등 다 있습니다.

  • 익스체인지 기회가 있습니다. 이건 어지간한 외국계 회사들이 들고 나오는 장점중 하나인 것 같습니다.

    • 그리고 해당 기회를 오피셜하지는 않지만 구전으로 많이 돌고, 또 많이 접할 수 있습니다. H1B이 나라별로 나오는 기준이 다르다거나 (한국은 빨리 나오는 편), 외국인을 , 미국으로 바로 가지않고 비교적 quota가 널널한 캐나다를 통해서 이민오는 경우도 상당히 많다거나 등.
    • 익스체인지까지는 아니더라도 종종 본사 출장(놀러?)가는 경우도 있습니다. 여행, 비행기 타는거 좋아하는 분이라면 쌍수 들고 환영할 듯 ㅎㅎ.
  • 일만 하면 됩니다.

    • 많은 의미를 함축하고 있습니다. 출퇴근 시간도 정해진 선 안에서는 제멋대로(?)여도 됩니다. 정말로 일만 하면 됩니다. 한국 기업을 예로 들면 9 to 6을 쓸데없을 정도로 엄격하게 지킨다던가, 회의를 무조건 다 참석한다거나… 그럴 필요 없습니다. 자신에게 있어서 비효율적이다 싶으면 충분히 이야기하면 다 맘대로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애당초 비효율적으로 일 할 기회 자체가 적으니 이 부분은 걱정 할 필요가 없습니다
    • 하지만 그렇다고 일이 적은 건 절대 아닙니다. 오히려 일을 더 많이 할 수도 있습니다. 아래 이야기하겠지만, 시차 문제로 출근 전/후에도 아침 회의나 밤 회의를 하기도 합니다. 본사 분들만 해도 언제 자는지, 쉬기는 쉬는지 알 수 없는 분들도 종종 보입니다. 주 52시간 고용법 같은 건 없어요.
    • 그렇다고 일을 많이 해야 한다는 압박이 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슈 발생한다고 밤샘 근무하는 경우도 거의 없어서 어떻게 보면 삶의 질은 더 좋은 느낌입니다.
    • 그런데 또 이 점은 최근의 한국 스타트업이랑은 정작 별 차이가 없을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스타트업 특성이라고 할 수도 있나?
  • 시차

    • 미국 서부 기준으로, 한국과 시차가 17(7)시간 (DST는 16(8)시간)이 납니다.
    • 한국 아침은 미국 저녁밤입니다. 그래서 아침 일어나자마자 회의를 하는 경우(89시)가 꽤 많습니다. 반대로 밤 12시에 회의를 하는 경우도 아-주 드물게 있고요. 물론 서로서로 편의를 보기 때문에 시간대가 안 맞다 싶으면 안 들어가니까 이건 걱정을 안해도 되지만서도…
    • 이러한 시차 문제는 특이한 근무시간 형태를 만들게 됩니다. 아침에 일하고, 농땡이 좀 치고 (?), 점심이랑 밤에 일하고, 또 적당히 농땡이 치고 밤에 또 일하고. 또 어떤 날은 루즈하게 하루종일 적당히 일하고(?). 이거 본사 근무하는 사람도 비슷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
    • 아, 그래도 걱정 마세요. 주말엔 일 안해요! 😄 휴가도 재택도 딱히 제약없이 쓸 수 있어서 기본적인 워라벨은 당연히 보장이 됩니다.
    • 또 하나 특이한 점은, 금요일에 겁나 바쁘고 월요일은 겁나 한가합니다. 한국의 금요일은 미국의 목요일이고, 한국의 월요일은 미국의 일요일이기 때문입니다.
  • 영어, 피할 수 없습니다.

    • 적어도 저희 회사는 아주 유창한 실력을 요구하지는 않았지만, 결국 모든 회의는 영어로 합니다. 절대로!! 피할 수 없습니다.

    •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적어도 코드 개발할 때 다는 주석과 오픈소스에 날리는 PR을 모두 영어로 쓸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이 최소요건이라고 생각합니다.

    • 그래도 저희 회사 같은 경우 편의를 많이 봐주는 편이어서, 적어도 회의할 때 실시간 영어 Transcription 기능을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ㅎㅎ. 반년간은 한 40퍼는 안 들리는 듯 ㅠㅜ. 특히 인도영어!!

    • 반년 쯤 넘어가니 슬슬 자막 안켜고도 회의 할만합니다. 어느 순간이 되면 자막이 제대로 필사도 못해와서 겁나 구려보일 때가 있는데 그 때쯤 끄게 됩니다. 서당 개도 3년이면 풍월을 읊는다더니.

2. 미국 회사로서의 이야기

자연히 외국(=본사, 혹은 여러 외국 회사)에서의 이야기도 자주 들려옵니다.

  • 외국 블라인드 가입이 가능합니다. 구글직원 아마존직원이랑 그외 등등 글로벌 기업들이 TC와 Layoff로 열심히 싸우는 모습 구경 가능 ㅎㅎ.
  • 인구 비중은, 의외로 본토인보다 이민계 시민권 취득자가 굉장히 많습니다. 개인적으로 인도계 50퍼, 나머지 동양인/백인 반반 쿼터 나누는 듯. 역시 IT 강국은 인도.
    • 특이한 게 한국인과 중국인도 꽤 많은데, 의외로 또 일본인은 거의 없습니다.
    • 아무래도 시민권을 먼저 얻고 오는 게 아닌 케이스도 많다 보니 비자 관련 트러블도 종종 보입니다. 먼 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가까이에서 이런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미묘한 감정이 드네요.
  • 일만 하면 됩니다. 근데 놀때는 또 화끈합니다.
    • 주기적으로 회사 내에서 파티를 여는데 음식도 푸짐하고 다들 즐겁게 노는 모습입니다. 노는 “일”에 투자한다는 개념이 꽤 신선한 느낌입니다.
    • 사실 한국에서도 이런 분위기 만드려고 형성은 하는데, 한국인들은 이런 파티 분위기에 익숙하지 않다 보니 아무래도 잘 드라이빙이 안 되는 느낌입니다. 아쉬워요 ㅎㅎ.
  • 해고는 정말 얄짤이 없습니다.
    • 보통 해고 통보 하고 일주일이면 보통 짐을 싸고 갑니다. 미국 Layoff meme으로 해고통보 받으면 그 즉시 사내 시스템 로그인이 안 된다는 이야기가 있던데, 거짓말이 아닐지도.
    • 이런 점에서 잔혹하다고는 할 수도 있는데, 어떻게 보면 좋다고 할 수 있는게 다른 사람에게 악영향을 미치는 “미꾸라지” 같은 사람이나, 위에 고여 있는 꼰대 고인물은 적어도 회사에 없습니다. 살아남을 수가 없어요.
    • 실력이 나빠서 해고당했다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말이라고 생각합니다. 해고 기준은 보통 실력과 회사와의 방향성을 보고서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실력이 좋더라도 회사와의 방향성에 잘 부합하지 않는다면 내쳐질 수 있습니다. 근데 그 정도면 아마 본인이 보통 촉이 오겠죠.
    • 설령 Layoff 되었다 하더라도 실력 되는 사람은 또 자리를 금방 찾더랍니다.
  • 보안
    • 보안이 한국만큼 엄청 (자질구레하게) 빡세지는 않은데, 다 트래킹 됩니다. 한번은 클립보드 내용도 다 트래킹당하는거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어떻게 보면 한국 회사보다 보안이 더 철저할지도 모릅니다. 당연하지만 업무용 컴퓨터로 뻘짓(=유출)할 생각 말아야 합니다!!
    • 게임은 깔아도 됩니다 ㅎㅎ
    • 보안 교육도 주기적으로 합니다. 재미있는 건 한국 회사인데 정작 한국에서 매년마다 하는 성교육이니 윤리교육이니 뭐시기니는 뭔가 공문이 안 오네요… 🙄
  • 음식
    • 한국처럼 음식점이 첩첩산중 쌓여있는 건 없어요. 적어도 실리콘벨리에는. 뉴욕에는 있을지도.
    • 그래서 배달해 먹습니다.
    • 결론은 음식은 한국에서 먹으세요. 같은 요리를 시키더라도 무한경쟁사회가 낳은 강남음식점들에서 나온 요리가 무조건 더 맛있습니다.
    • 특이한 점은 인도인들 비중이 높아서 그런지 카레집이 굉장히 많다는 것. 사실상 한국의 돈까스 취급

3. 개발 문화

비슷한 듯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이건 비단 외국 회사만의 특징이라기보다 좋은 회사가 가져야 할 문화가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 경력 년수 상관없는 직급 그리고 페이
    • 자신이 정말 실력이 (상대적으로) 좋다고 생각하면 외국계에 반드시 도전해야 하는 이유가 이것입니다. 경력 년수로 페이를 매겨서 인건비를 감축하려고 하는 한국식 인사 문화에서는 정해진 테이블 바깥을 벗어나기가 힘듭니다.
  • 프로젝트 리드하기
    • 프로젝트를 리드해야 하는 경우가 굉장히 많습니다. Input은 PM/CS의 요구사항이요, Output은 기능이어야 합니다. “혼자서도 잘해요”가 가능해야 합니다.
    • 단순 개발 능력보다 그 이상을 요구합니다. 효율적인 방식으로 요구사항을 구현해야 하는 것은 물론이요, 요구사항에서 기능이 모호한 게 있다면 알아서 구체화해야 하고, 예상되는 impact 및 개발 일정까지 모두 추산해 낼 수 있어야 합니다.
    • 사실 이건 어떤 회사든 다 하는 것이고 해야하는 것이라고 이야기 할 수 있지만, 아래 언급하는 리뷰 문화와 맞물려서 굉장히 난이도가 높아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 Review, Review, Review
    • PR 리뷰는 물론이요, 문서도 리뷰합니다. 그리고 리뷰의 핵심 인물들(codeowner, QE, PM) 모두가 이를 보고 납득해야 합니다.
    • 다들 리뷰에 굉장히 적극적입니다. 내 분야 아니라고 칼같이 쳐내는 거? 그런 건 없습니다. 이 문화에 호의적이지 않다면 아마 회사 다니는 게 힘들지도 모르겠습니다.
    • 미팅에 시간을 덜 쓰는 대신 여기에 시간을 상당히 쏟아붓는다는 느낌입니다.
    • 리뷰를 잘 할 수 있는 능력 또한 굉장히 중요한 평가 요소로 본다는 느낌입니다.
  • Meeting, Meeting, Meeting
    • 짧은 미팅이 정~말 많습니다.
    • 주제와 시간을 정해놓고 미팅을 하기 때문에 효율성은 한국의 그것에 비해 훨씬 좋다고 느낍니다. 애당초 다른 사람들이 다른 미팅 일정이 있어서 질질 끌리는 순간 훅훅 나가버려요.
    • 매니징 관련 미팅도 자주 잡히는데 1:1 로 30분 가량의 충분히 긴 시간을 할애해 준다는 게 굉장히 큰 특징입니다. 나에게 이렇게 많은 시간을 할애해 준다는 게 첫번째 감동 포인트고, 두번째로 이 정도 시간을 할애해야 개개인을 제대로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낍니다 (고충이라던가 불만이라던가…).
    • 기본적으로 미팅 일정 잡는게 아주 쉽습니다. 그냥 잡고 싶으면 캘린더에 슥 그으면 땡입니다. 기본적으로 캘린더에서 상호 일정도 모두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런 환경 때문에 잦은 미팅이 활성화 될 수 있었던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투 트랙
    • 외국계 기업에서 많이 알려진 투트랙이 잘 알려진대로 활성화 되어 있습니다. 엔지니어든 매니저든 자유롭게 트랙을 와리가리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매니저가 개발을 안하는 것도 아닙니다. 사실 매니저가 PR에 들어올 때가 제일 무서워요… 😨

4. Option

여느 스타트업과 같이, 스톡이 있습니다. 사실 페이퍼 스톡, 즉 Option이죠. 아직 비상장 기업이니깐…

Option을 execute 할 수 있는데, 한국 주식이 아니라 외국 주식으로 받게 됩니다. 옵션은 Carta와 같은 주식 관리 회사에 위임받아 맡겨지게 됩니다. 계약서도 다 작성하기 때문에 먹튀는 아마도 안심… 해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무래도 외국 주식을 다루다 보니 이에 대해서 또 알아야 하는데, 재미있는 점은 주식의 가치가 2개가 있다는 사실입니다. 일반 주식인 Class A와 의결권이 있는 Class C 주식이 있고, 각각 현재 기업 가치와 상장 목표 가치에 따라 가격이 정해진다는 점 등…

또 재미있는 점이 한국 회사와는 다르게 (4년이던가요?) 2년만 다녀도 옵션 행사가 가능합니다. 훨씬 제약이 적은 편.

물론, 상장이 되지 않으면 옵션은 제 가치를 발휘할 수 없게 됩니다. 아주 운이 나쁜 경우에는 휴지조각이 될 수도 있겠습니다. 사실 이건 어떤 주식이든 다 그렇죠.

글은 이렇게 쓰지만, 아직 회사도 저도 갈 길이 멀어서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점은 없습니다. 정작 아는 것도 아직 별로 없네요 ㅠㅠ. 이건 먼 훗날에 제가 글을 다시 쓸 날이 오게 되면 그때 더 이야기 하는 걸로.

5. 도전합시다

외국계 생각이 있다면, 일단 도전해보는게 절반인 것 같습니다. 특히 처음 시작하는 입장에서 고민하는 것이 영어일텐데, 실제 현업에서의 영어는 점수의 문제가 아니고, 개발쪽 discussion을 할 수 있느냐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외국 개발 서적 원서를 읽는 것도 이러한 점에 있어서는 어쩌면 꽤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네요.

이외에도 제가 다니는 회사에 대해서 궁금하신 점 있으면 댓글, 혹은 제 개인 이메일이나 링크드인으로 연락처 남겨주시면 답변드리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