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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12. 10. 01:47 - lazykuna

표현할 줄 아는 삶

예전부터 나는 표현을 잘 못한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다. 정확히 말하면, 남에게 좋은 소리를 잘 못 하는 것 같다. 남이 잘했으면 잘했다고 칭찬해주고, 용기가 필요하면 북돋아주고, 잘못했으면 사과해주고 해야 하는데, 어째서인지 이걸 잘 못 하는 것이었다. 여기서 잘 못 한다는 것은, 해야 될 때 목구멍에 걸려서 말을 하지 못하거나, 혹은 아예 해야겠다는 생각을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이걸 인지한 이후로는 감사의 표현과 칭찬을 최대한 많이 하려고 노력하고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표현해야 할 "감정"이라는 것이 충분하지 않음을 느끼고 있었다. 이를테면 남과 이야기 할 때 무언가 주제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 것에는 익숙하지만, "감정"을 나누는 것에는 익숙하지 못하다는 것이다. 감정을 주제로 이야기를 이끌어 내는 법을 모르고, 낼 수도 없다. 사실 그렇게 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를 이전에는 못했던 것인데, 문득 사람들과 이야기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들었다. 감정적으로 접근하려고 하면 나도 똑같이 감정을 전달해 줘야 한다는 것을.

그럼 그 감정으로 대화라는 것은 어떻게 할 수 있을까? 수동적인 것으로부터 시작하면, 상대가 감정을 보여주면 나도 거기에 대해서 감정을 보여줘야 대화가 될 것이다. 이를테면 상대가 인사하면 같이 인사해주는 것으로부터 시작해서, 칭찬해주면 감사하다고 하거나 또는 나도 상대를 칭찬해주고, 상대가 선물을 주면 감사하다는 말을 하거나 나도 똑같이 선물을 주는 것이다. 되짚어보면, 상대의 호의를 제때 알아채지 못했던 지난 순간들이 떠오른다. 선물을 받았는데 감사 인사 한번 제대로 안 했거나, 혹은 늦게 했거나, 혹은 똑같이 호의를 되돌려 주거나 하는 것 등등. 그리고 굳이 말이 아니라도, 말이나 행동, 그리고 반응의 신속함으로도 그 감정이 전달되는 걸 무심코 잊고 있었다.

가끔은 대화가 필요하다면, 능동적으로 상대에게 먼저 다가가야 할 때가 있다. 하지만 공통된 관심사나 주제가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 때 감정의 대화를 생각해 볼 수 있었을 것이다. 상대에게 선물을 먼저 주거나, 생일축하를 해주거나. 꼭 거창하거나 재밌어야 할 필요는 없고 적어도 "내 성의, 감정"이 전달되는 게 중요하다. 씹힐 수도 있지만 두려워 말아야 한다. 의도하지 않았을 수도 있고, 의도했을 수도 있다. 그럼 그 또한 상대의 감정이고, 담담이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는 그런 내 감정이 거절당하는 게 두려웠던 것 같다. 그래서일까 내가 그러한 목적으로 먼저 남에게 다가간 적은 거의 없었다. 심지어는 그럴 생각 조차 안 하게 되었다. 그것 또한 내 많은 기회를 없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상대에게 다가가기 위해 감성적인 대화를 준비하다 보면 자연스레 상대에 대한 관심이 생기기 마련이다. 칭찬하고 감사해야 할 것을 찾기 위해 하루 일과, 취미, 코디, 장식품 등을 살펴볼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 그러한 감정이 없으면 상대를 심문하는 것처럼 대화가 흘러가기 마련이고, 불편해진다. 생각해 보면 내 대화는 종종 그래왔고, 왜 그럴까에 대한 의문은 있었으나 거기에 대해서 답을 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잡담이지만, 재미있는 건 이런 건 물어봐도 상대도 사실 잘 모른다. 역시 이런건 태생적인 "EQ" 같은 게 아닐까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알면 후천적으로라도 늘릴 수 있지 않을까?

그리고 이 모든 능동적인 태도는 결국 상대를 위한 마음가짐이 있어야 한다. 축하를 받고 기뻐할 친구를 보면 나도 기쁠 것은 당연하다. 그렇게 상대를 즐겁고 기분 좋게 하는게 나도 즐거운 거니까, 그러면 자연스럽게 상대에게 능동적으로 접근하려는 동기부여가 된다. 그 마음가짐을 항상 가지고 있어야 했다. 그동안 상대가 뭘 하든지 나랑은 별로 상관없다는 마인드로 살아왔지만, 항상 그렇게 살 수는 없다는 걸 요즘 느낀다. 아니, 그렇게 살아도 되지만 그러면 결국 주변에 나밖에 남지 않는다.

어릴 시절을 돌이켜 보면, 딱히 집에서 위 부류의 대화를 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필요한 일만 지시하고, 군것질 하지 말고, 공부하라는 이야기를 들을 뿐이고, 그 사이에 불필요한 감정이 들어가는 일은 없었다. 부모님끼리도 딱히 교감이 있으시진 않았다. 되려 잘못한 게 있으면 혼나기는 했다. 그렇게 본 게 없으니 아마 내가 잘 할 수도 없었던 건 당연한 걸 수도 있다. 그리고 전반적으로 남성에겐 감정표현을 억압하는 사회 분위기도 이에 일조할 것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계속 이렇게 사는 것이 합리화 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리고... 아마 "유복한" 가정 보다는 그렇지 못한 집안이 훨씬 많을 것이기도 하다. (경험상, 그리고 시대 배경상 그럴 수밖에 없다.)

그동안 이런 실마리 같은 생각들을 해왔지만 글로 풀어 쓰기 어려웠는데, 이제서야 이걸 미숙하게나마 글로 쓸 수 있게 되었다. 너무 늦게 깨달은 것인가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이제라도 알았으니 차라리 다행이다. Always better late than neve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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